망가진 여친 외모에 대한 남자의 솔직한 반응

마녀의 분노


6년 열애를 끝냈다. 아니, 일방적으로 끝냄을 당한 거지. 이건. 이유는 단순했다. 내 컴퓨터 사랑 때문에 지가 외롭다나 뭐라나.

사실은 연애 초기와는 다른 내 외모 때문이겠지.
그 시절의 난 풍성한 머릿결을 휘날리며 너를 유혹했었는데…

지금의 난 일 중독에 걸린 ‘마녀’ 페이스. 머리도 계속 떡져있고 수세미 같은 질감에.. 인정하지만 이건 관리하면 되는 거라고! 언젠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이라 좋다며?!?

너 나보고 PC중독이라 했지?
아니 그럼 직업이 프로그래먼데 컴퓨터 안 끼고 살고 배겨?

너는 파티쉐니까 빵 속에서 살고 있잖아. 너 맨날 파리에서 먹은 몽블랑인지 뭔지하는 케익 쪼가리 종일 찾아다닐 때도 내가 군말 없이 다녀준 거 기억 안나? 솔직히 뭐 있냐? 케익 맛이 거기서 거기지? 언제는 밀가루 속에서 헤엄치는 꿈도 꿨다며.

너는 빠져 있어도 되고, 나는 안 된다는 거야 지금?

내가 일 중독 아니었음 니가 지금 매고 다니는 가방, 명품 자켓 입고 댕길 수나 있을 것 같아?! 그거 내가 하루 열세 시간씩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서 번 돈으로 산 거야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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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arah laboring under the misconception that partially obscuring her face will slow down my picture taking… seriously, how long has she known me?

colorblindPICASO/Sarah laboring under the misconception that partially obscuring her …

이상하다. 머리도 아프고 몸도 으슬으슬 한게,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벼락 맞아도 끄떡 없을 것 같다던 내가! 고작 실연 땜에?!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. 일이 오늘 해야 할 일이… 거래처랑 연락은 했던가? 아, 머리 아파, 헉! 이건 뭐지?! 머리카락이 왜 한 주먹이 빠지는 거야, 어깨가 빠질 것… 같….

여긴 어디? 나는 누구? 병원? 저건, 엄마랑 전남친? 무슨 얘기야? 반응이 왜 저래?
“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는지…괜찮을 거예요. 본인이 알면 좀 충격이겠지만.”

“위장이 특히 심하다네요. 어쩐지 컴퓨터 끼고 살 때부터 알아봤어.”
“그래도 우리 예비 사위 아니었음 큰일날 뻔 했네.”

저 반응은 심각한 병임이 분명하다. 그리고… 엄마, 걔 이제 엄마가 이뻐하는 예비사위 아니예요.
우리 쫑났어요. 엄만 내가 무슨 병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겠지.

“병? 쓸데없는 소리 말고, 돈도 좋지만 컴퓨터나 그만 끼고 살아 이 기집애아.”

 Lost a few Pounds

Lost a few Pounds

Rubin 110/ Lost a few Pounds

일주일 후.

가족들은 내게 결국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. 남친 놈은 그대로 가버린 뒤 ‘얼른 나아’ 문자 하나 띡 보내놓곤 깜깜무소식이다. 그래, 이제 너와 난 남이지.

또 머리가 빠진다. 머리가 빠지는 병이라… 뭐가 있을까?
백혈병? 암? 어떤 것이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건 둘의 대화로 짐작할 수 있었다. 이제 남은 생애동안 무엇을 해야할까. 가족에게도 직원들한테도 이제 막 대하지 말아야 겠다 결심했다. 나의 마지막은 ‘마녀’가 아니라 ‘천사’로 기억되고 싶어. 근데 뭐야, 이거 뭐지? 오늘까지 완성해야 하는… 시간 없는데! B팀 이 머저리 군단, 일 칠 줄 알았지! 아냐, 마음을 가다듬고..

“이건, 오늘 안으로 어서 해결하도록 해요. 우훗”

놀라지마. 이런 모습도 오래 못 본다고 니네. 솔직히 나같은 유능한 선배랑 같이 일 했다는 것에 감사해라. 나 살 날 얼마 안 남았다고. 마음이 무거워지고 자꾸만 슬퍼지려고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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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hining
_Paula AnDDrade/Shining

“안 찾아와도 돼.”

집 앞에 남친이 서 있었다. 동정하지 마.

“머리.. 많이 빠졌네.”

“괜찮아.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. 찾아오지 마, 이제.”

“알고 있었어? 탈모는 조기에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는데 왜 몰랐어.”

“그르게… 뭐?”

질문할 새도 없이 그가 나의 손을 붙잡고 간 곳은 약국이었다.

“약사님, 이 사람이 종일 컴퓨터랑 씨름해서 탈모가 생겼거든요, 잘 듣는 약 없을까요? 그리고 막 어깨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하고 몸이 정상이 아니에요.”

얘가 왜 이래 진짜? 쪽팔리게! 병원에서 다 들었다고! 무슨 탈모야, 탈모는!

“아가씨 컴퓨터 오래 해서 뒷목 뻣뻣하고 눈도 피로하고, 머리에 기름도 많이 끼고 많이 빠지고 그러지?
나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는 게 쭉 계속 되면 혈액순환이 안 돼서 머리 쪽에 영향 줄 수도 있어. 요즘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몸이 망가질 정도로 해대니… 쯧쯧.”

뭐야, 이 상황은? 어리둥절하며 약사님이 추천해 주시는 무언가를 받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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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에 들린 것은 마이녹실, 바르는 탈모치료제.

(현대약품의 탈모치료제 마이녹실 5%는 FDA가 승인한 외용액인 미녹시딜 제제로 만들고, 다년간의 노하우와 임상실험으로의 검증을 통한 안전한 탈모치료제로 많은 탈모인들에게 탈모를 극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그것.)

아저씨, 참 세심하시네. 마이녹실 모델인 탤런트 이창훈 아저씨 포스터까지 주셨어. 하하하
이 분처럼 관리 잘하라나 어쩌라나.

일 때문에 컴퓨터 오래 해야 되면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해주고 혈액순환 잘 되게 찜질이나 마사지도 가볍게 해주란다.

대체 이 병맛 같은 상황은 뭐지? 나 불치병 아니었어?!?

얘는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! 혼자 집으로 간 거야?

야! 근데 갑자기 생각난 건데 너 가게 차릴 때, 계약금 빌려간 거.
오천만원 니 말대로 뉘집 멍멍이 이름 아니니까 정산은 똑바로 하고 떠나라. 이런 걸로 때울 생각하지 말고.
니 속 모를 줄 알아?! 내가 사준 옷도 다 벗어! 중고로 팔아 탈모 치료값으로 치는 셈 치자고!